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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적는다는 게, 사실 좀 이상한 일 아닌가요? 2007년 개봉한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보면서 저도 그 질문을 처음 떠올렸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시한부 환자가 병실에서 만나 함께 세계를 누비는 이야기인데, 막상 보고 나면 웃고 울었던 것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물음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버킷리스트 영화 포스터

시한부 선고 앞에 선 두 남자, 당신이라면 무엇을 적겠습니까

영화의 두 주인공은 공통점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는 평생 자동차 정비공으로 가족을 위해 조용히 살아온 인물이고,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은 병원까지 소유한 억만장자 사업가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같은 병실에서 시한부(terminal illness) 진단을 함께 받게 됩니다. 여기서 시한부란 의학적으로 생존 가능 기간이 한정된 상태를 뜻하며,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 모두 말기 암 판정을 받습니다.

카터는 46년 전 대학 시절 철학 교수에게 들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 과제를 떠올립니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경험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정리한 것으로, kick the bucket(죽다)이라는 영어 관용표현에서 파생된 개념입니다. 카터가 병상에서 조용히 적어 내려가던 그 리스트를 에드워드가 우연히 줍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큰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처음으로 "내가 못 하고 있는 게 뭐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때 적었던 메모가 아직 핸드폰 메모앱에 남아 있는데, 대부분이 여전히 미루고 있는 것들이더군요. 이 장면을 보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영화 초반부터 묘하게 몰입이 됐습니다.

카터의 리스트에는 "장엄한 광경 보기", "모르는 사람들 도와주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같은 항목이 있었고, 에드워드는 여기에 스카이다이빙, 사자 사냥, 만리장성 바이크 질주 등을 추가합니다. 두 사람의 리스트를 보면 한 사람은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극과 경험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 카터의 리스트: 장엄한 광경 보기, 모르는 사람 돕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머스탱 셸비로 카레이싱, 정신병자 되지 말기
  • 에드워드의 추가 항목: 스카이다이빙,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키스, 문신 새기기, 타지마할·피라미드·만리장성·세렝게티 방문
  • 두 리스트의 교집합: 삶의 마지막에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통된 아쉬움
요약: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남자가 각자의 버킷 리스트를 합쳐 여행을 떠나며, 두 목록의 차이가 오히려 두 사람의 내면 차이를 보여줍니다.

세계를 누비며 쌓인 우정, 그런데 진짜 클라이맥스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타지마할, 이집트 피라미드, 아프리카 세렝게티, 홍콩,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에드워드의 재력 덕분에 두 사람의 여정은 그야말로 세계를 무대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스카이다이빙도, 만리장성 바이크 질주도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건넨 질문 두 가지였습니다.

카터는 고대 이집트의 사후세계관을 언급하며 에드워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인생의 행복을 찾았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삶이 다른 이를 기쁘게 했습니까?" 이 두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thematic statement)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제의식이란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뜻하는데, 이 영화의 그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라는 물음으로 압축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저는 이 장면에서 에드워드가 두 번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억만장자이고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인데, 정작 "내 삶이 누군가를 기쁘게 했나?"는 물음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는 장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질문은 나이가 들수록, 성취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friendship)이 진짜로 깊어지는 계기는 화려한 모험이 아니라, 카터가 에드워드를 딸의 집 앞으로 데려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역정을 냈지만, 카터가 남긴 편지를 읽고 결국 딸을 찾아가 화해합니다. 그리고 어린 외손녀에게 키스를 하며 리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키스하기"를 이룹니다. 이 장면의 감동은 여행 장면 전체를 합친 것보다 컸습니다.

요약: 두 사람의 우정은 화려한 세계 여행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결핍을 마주하게 하는 솔직한 대화와 용기 있는 행동에서 완성됩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영화, 그래서 아쉬운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버킷리스트》는 롭 라이너 감독이 연출하고, 저스틴 잭햄이 각본을 쓴 작품입니다. 제작비 4,5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약 1억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8년 첫 개봉 이후 2017년 재개봉까지 총 284,36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잭 니콜슨의 마지막 주연작이라는 점도 이 영화가 갖는 영화사적 의의 중 하나입니다(출처: IMDb - The Bucket List).

제가 직접 보면서 좋았던 점은 명확합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았고,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영화 내내 자연스러웠습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란 두 배우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적 교류의 질감을 뜻하는 말로, 이 영화에서는 잭 니콜슨의 거침없는 에너지와 모건 프리먼의 차분한 무게감이 서로 완벽하게 대비되며 시너지를 냈습니다.

다만 솔직히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전반부는 두 캐릭터의 대비를 꽤 오래 끌고 가는데, 저는 중반까지 "이거 좀 늘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에드워드의 재력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여행 설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가끔 "이건 억만장자 판타지 아닌가?"라는 거리감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남긴 메시지는 묵직합니다. 카터의 장례식에서 에드워드가 읽는 고별사, 그리고 마지막 히말라야 봉우리에 나란히 놓인 두 커피 캔. 결국 두 사람이 끝끝내 완성하지 못한 "장엄한 광경 보기"를 토머스가 대신 이루어 주는 엔딩은, 삶의 의미(meaning of life)란 살아있는 동안뿐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완성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 좋았던 점: 무거운 주제를 유머와 감동으로 균형 있게 풀어낸 연출,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
  • 아쉬웠던 점: 억만장자 재력 기반의 비현실적 설정, 비교적 예측 가능한 서사 구조
  • 기억에 남는 장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의 두 질문, 에드워드가 딸과 화해하는 장면, 히말라야 봉우리의 두 커피 캔
요약: 현실적 한계는 있지만, 삶의 의미를 되묻는 두 배우의 연기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영화의 무게를 충분히 지탱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앱을 열었습니다. 몇 년 전 수술 전날 적어두었던 그 목록을요. 거기서 아직 못 한 것 하나를 골라 다음 달 일정에 넣었습니다. 거창한 세계 여행도 아니고, 억만장자의 재력도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한 조건은 사실 시간이 아니라 결심인 것 같습니다.

혹시 오랫동안 미뤄온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적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완성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적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작이니까요.

참고: IMDb - The Bucket Lis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