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1998)는 개봉 당시 리얼리티 TV 포맷을 SF적 극단으로 밀어붙인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된 삶을 살아왔고, 주변 인물 전원이 계약 배우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설정 자체가 너무 황당해서 웃으면서 봤는데, 두 번째 관람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트루먼의 평범한 아침 출근 장면을 다시 보니, 그 '평범함'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것인지 새삼 섬뜩했습니다.영화 속 복선과 상징이 말하는 것들《트루먼 쇼》를 분석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개념이 '디에제시스(diegesis)'입니다. 여기서 디에제시스란 영화 속 세계, 즉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허구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트루먼에게는 씨헤이븐이 완전한 디에..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처음 봤을 때 "예쁘게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 하나만 갖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 화려한 색채 연출과 대칭 구도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분홍색 건물이 왜 그렇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지, 화면비가 왜 갑자기 달라지는지 — 그 이유를 하나씩 따져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색채 연출 — "예쁜 화면"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실수일반적으로 색채 연출(Color Grading)은 영화의 무드를 조정하는 후반 작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색채 연출이란 촬영된 영상의 색조와 명도, 채도를 조절해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
솔직히 저는 《라라랜드》를 처음 봤을 때 엔딩에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왜 울었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슬프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색감, 음악, 편집이라는 세 가지 도구로 관객의 감정을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설계를 하나씩 뜯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색감과 음악 — 말 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일반적으로 영화의 결말은 대사로 감정을 정리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라라랜드》 엔딩을 다시 들여다봤을 때 놀란 건 마지막 몇 분 동안 의미 있는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신 색과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이 영화의 색채 설계는 촬영감독 리누스 산드그렌(Linus Sandgren)이 맡았는데, 시즌별로 미아의 의상과..
《기생충》을 두 번째로 봤을 때 처음과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첫 관람에서는 반전과 사건 전개에 정신이 팔렸는데, 다시 보니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대사가 아니라 인물들이 서 있는 위치였습니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그리고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사람. 이 영화의 공간 설계가 단순한 미술 선택이 아니라는 걸, 두 번째 관람에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반지하와 대저택, 같은 창문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다《기생충》의 공간 연출에서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창문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 창문과 박 사장 가족의 거실 창문, 둘 다 바깥을 향해 열려 있지만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다릅니다.기택 가족의 창문 밖에는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이 보입니다. 시야가 지면 아래에 고정되..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깨달은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소울》을 두 번째로 보던 날,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제목 한 단어가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제목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전부를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좋은 영화일수록 제목 안에 감독의 핵심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고, 그걸 알고 보면 감상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제목 속에 숨겨진 의미, 눈치채셨나요?영화를 고를 때 제목을 얼마나 유심히 보시나요? 솔직히 저도 한동안은 평점과 예고편에만 집중했습니다. 제목은 그냥 구분을 위한 이름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좋은 작품들은 제목 자체가 하나의 장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트루먼 쇼(The Truman Show)》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
리뷰를 잘 쓰려면 줄거리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장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죠. 그런데 어느 날 친구한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야, 나 그 영화 보려고 했는데 네 글 읽고 다 알아버렸잖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좋은 리뷰는 영화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영화관으로 끌어당기는 글이라는 것을.첫인상만으로도 충분한 이유리뷰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정보를 많이 줄수록 좋은 글'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줄거리 요약, 등장인물 소개, 결말 직전까지의 전개... 지금 생각하면 그건 리뷰가 아니라 시놉시스에 가까웠습니다.직접 겪어보니 독자들이 진짜 원하는 건 달랐습니다. "이 영화 나한테 맞을까?"라는 질문에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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