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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우주 궤도 비행 성공 뒤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2016년 개봉 당시 제작비 2,500만 달러로 북미에서만 약 1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이 영화는, 흥행 성적보다 "왜 이 사람들을 우리는 몰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힘이 더 강했습니다.

1960년대 NASA와 '인간 컴퓨터'의 시대
영화의 배경은 1962년,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냉전(Cold War) 시기입니다. 냉전이란 군사적 충돌 없이 이념과 기술력으로 맞붙은 미소 간의 대립 구도를 말합니다.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고, NASA는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을 통해 유인 우주 궤도 비행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머큐리 계획이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프로그램으로, 우주비행사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시기 NASA에는 '인간 컴퓨터(Human Computer)'라 불리는 직군이 존재했습니다. 인간 컴퓨터란 전자식 계산기가 보편화되기 전, 수학 공식을 손으로 계산하여 우주선 궤도·속도·재진입 지점 등을 산출하던 계산 전문 인력을 가리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낯선 직업이지만, 당시 NASA에서는 이들의 계산 없이 발사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영화는 이 인간 컴퓨터 집단 안에 있었던 흑인 여성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제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우주 개발 영화라기에 거대한 로켓과 우주복 장면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화면을 가득 채운 건 연필과 칠판, 그리고 기계식 계산기였습니다.
세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뚫어낸 벽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세 주인공이 각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니까 인정받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캐서린 존슨은 해석기하학(Analytic Geometry)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해석기하학이란 좌표계를 이용해 도형과 공간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분석하는 수학의 한 분야로, 우주선 궤도 계산에 필수적인 기반 학문입니다. 그녀는 IBM 전자 컴퓨터가 내놓은 계산값을 직접 검증해달라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의 요청을 받을 만큼 신뢰를 얻게 됩니다.
도로시 본의 이야기는 제게 특히 와닿았습니다. IBM 7090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NASA에 도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도서관에서 포트란(FORTRAN)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합니다. 포트란이란 과학·공학 계산을 위해 설계된 초기 프로그래밍 언어로, 당시 NASA의 계산 업무를 자동화하는 핵심 도구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도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 시스템이 도입될 때 미리 공부해두는 편인데, 그게 생존 전략이 아닌 선택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도로시와는 처지가 달랐습니다. 도로시에게 그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메리 잭슨은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법원 소송까지 감행합니다. 당시 필요한 수강 자격을 얻으려면 백인 전용 교육 기관에 입학해야 했는데, 그 기관들은 흑인의 입학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판사에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판결을 내릴 기회"라고 설득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대사였습니다.
영화에서 세 인물이 각자 극복한 장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캐서린 존슨: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 회의 참석 금지, 기밀 문서 접근 차단 등 업무 환경 차별
- 도로시 본: 실질적 주임(Supervisor) 역할 수행에도 임시직 유지, 승진 차단
- 메리 잭슨: 엔지니어 자격 취득에 필요한 교육 과정 자체에 대한 인종 장벽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당시의 차별이 단순히 감정적인 혐오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설계된 구조였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영화가 공개된 이후 실존 인물들은 미국 의회 명예 황금상을 수여받았고, 2019년에는 NASA 본부 앞 거리가 '히든 피겨스 웨이(Hidden Figures Way)'로 개명되었습니다. 또한 2020년 2월, 캐서린 존슨은 101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이쯤 되면 영화의 제목이 담고 있는 이중적 의미, 즉 숨겨진 인물(Hidden Figures)이자 가려진 수치(Hidden Numbers)라는 뜻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일부에서는 이 영화가 차별의 현실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포장했다는 비판을 제기합니다. 실제로 알 해리슨이 화장실 표지판을 직접 부수는 장면은 극적 각색이며, 실제 캐서린 존슨은 유색인종 화장실 문제를 다소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두고 "차별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세 주인공이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즉 이공계 학문 전반에서 여성과 소수 집단의 대표성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내 STEM 직군 종사자 중 흑인 여성의 비율은 전체의 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미국 국립과학재단). 숫자만 보면 히든 피겨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로튼 토마토 신선도 93%, IMDb 평점 7.9를 기록했으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색상·여우조연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성과를 거뒀습니다(출처: IMDb).
히든 피겨스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를 그리면서도, 어떻게 그 결말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도로시 본이 혼자 포트란을 공부하던 장면을 자꾸 떠올렸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도와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다음 시대를 혼자 준비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 새로운 기술과 환경 변화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E%88%EB%93%A0%20%ED%94%BC%EA%B2%A8%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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