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영화를 검은 사제들의 단순한 후속작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 꽤 달랐습니다. 공포 영화를 기대했는데 심리 드라마를 본 느낌이 들었고, 그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이 영화를 즐기는 핵심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컬트 장르인데 왜 무섭지 않을까
검은 수녀들을 보고 나서 "생각보다 안 무섭다"는 반응을 주변에서 꽤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노린 공포는 점프 스케어(화면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관객을 놀래키는 연출 방식)가 아닙니다. 점프 스케어란 쉽게 말해 '갑자기 놀래키기'에 해당하는데, 검은 수녀들은 그 방식을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대신 영화는 어두운 복도, 차가운 성당, 기도 소리, 침묵 같은 요소들을 쌓아 올리며 심리적 압박을 만들어 냅니다. 제가 직접 봐보니 이 방식이 초반부에는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라기보다, 뭔가 계속 눌리는 기분 있잖습니까. 그게 한 두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영화의 중심 소재인 구마 의식(Exorcism)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구마 의식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한 장엄 구마 예식을 말하는데, 실제로는 교구장 주교가 권한을 위임한 사제만이 집전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가 구마를 시도한다는 설정인데, 여기서 '서품'이란 가톨릭에서 부제, 사제, 주교 등 성직자가 되는 성품 성사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가톨릭 교회법 제1024조에 따르면 여성은 이 서품 자체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화 속 유니아 수녀가 금기를 깨는 행위는 단순한 규칙 위반이 아니라 교회 구조 자체에 균열을 내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출처: 바티칸 교황청 교회법 자료실)
이 영화가 오컬트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공포보다 여성 서사에 방점을 찍은 결정은, 생각해보면 꽤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기존 오컬트 영화에서 여성 인물이 주로 피해자나 부마자(악령에 씌인 사람)로만 등장하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수녀들이 직접 의식을 주도하는 구도로 설정을 뒤집었습니다. 여기서 부마자란 악령이 빙의한 피해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핵심 대립 구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믿음 대 의학: 구마를 믿는 유니아 수녀 vs 정신의학만을 신뢰하는 바오로 신부
- 규칙 대 생존: 교회의 금기를 지키는 것 vs 소년을 살리는 것
- 가톨릭 대 무속: 구마 의식과 굿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구조
- 성직자 대 수도자: 서품을 받은 사제와 서원으로만 존재하는 수녀의 권한 차이
경험과 의견: 분위기는 좋은데 후반부가 아쉬운 이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실 구마 의식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두 수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장면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반발심이 동질감으로 바뀌는 흐름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전여빈이 연기한 미카엘라 수녀가 탕후루를 먹는 장면 같은 작은 디테일들이 오히려 캐릭터를 살렸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카엘라 수녀의 배경에 무당의 신내림이 엮여 있다는 설정은 처음에 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가톨릭 수녀와 무속 신앙이 한 캐릭터 안에 공존하는 구도가 흥미롭긴 했지만, 그 연결고리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로 흘러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 즉 유니아 수녀가 악령인 가미긴(Camigin)을 자신의 몸에 가두고 스스로 희생하는 결말은 강렬하긴 했습니다. 여기서 가미긴이란 솔로몬의 72 악령 목록에서 언급되는 존재로,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악마입니다. 그 힘이 너무 강해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는 설정을 활용한 방식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결말이 완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유니아가 자궁암 말기라는 사실이 결말 직전에서야 드러나는 구조인데, 복선이 충분하지 않아서 희생의 무게감이 다소 약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을 보면 국내 누적 관객 167만여 명으로 손익분기점(160만 명)을 넘겼고, 인도네시아에서도 개봉 12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는 한국 오컬트 영화의 해외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의 성과는 역대 한국 영화 개봉 5일 최고 관객 기록을 세울 만큼 이례적이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의 강점과 약점을 정직하게 짚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강점: 심리적 압박감을 만드는 분위기 연출, 여성 인물 중심의 오컬트 서사, 두 배우의 케미
- 약점: 유니아 캐릭터의 서사 설명 부족, 후반부의 장르적 전형성, 가톨릭 고증 오류 일부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고, 여성 연대 드라마로 접근하면 꽤 만족스러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두 수녀의 관계 자체에 집중했을 때 이 영화가 가장 잘 보였습니다. 무서운 영화를 찾는다면 다른 선택지를 권하고, 송혜교와 전여빈의 호흡이 궁금하다면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엔딩 이후 강동원의 등장이 암시하는 속편도 나름 기대가 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2%80%EC%9D%80%20%EC%88%98%EB%85%80%EB%93%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