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첫사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어떤 장면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2025년 2월 개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11년 대만 원작을 한국 정서로 옮긴 청춘 로맨스 영화입니다. 진영과 다현이 주연을 맡았고, 102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2000년대 초반의 공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의 향수, 어디까지 진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이게 기억을 얼마나 정확하게 복원하려 했는가"였습니다. 극 중에는 핑클의 'Now'(2000년 발매),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2004년), 버즈의 '가시'(2005년)가 나오고, S.E.S. 유진 머리띠와 제크 과자, 가을동화 속 원빈의 대사 같은 시대 소품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용어로 말하자면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에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여기서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영화 속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축하는 미술 전반의 작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소품들을 보며 웃으면서도 동시에 "이건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편집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절을 살았던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2002년 교실은 저렇게 따뜻한 색감이 아니었고, 저렇게 정돈된 풍경도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재현하는 2000년대 초반은 현실이라기보다 회고(回顧)적 시선으로 재구성된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원작 리메이크 과정에서도 의식적으로 선택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원작의 대만대지진 장면은 수해 장면으로, 풍등 올리는 장면은 남산 열쇠광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각본가 김진경 작가가 대만적 요소를 한국적 정서로 치환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선택된 것들이 전부 "향수를 자극하기 좋은" 소재들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2002 월드컵, 비트와 슬램덩크 포스터, 정우성 오마주까지. 영화가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이 기억이 있냐고요.
첫사랑의 서툼, 그게 과연 낭만이었을까
이 영화의 핵심 감정을 한 단어로 고르라면 저는 망설임을 고르겠습니다. 주인공 구진우(진영)는 오선아(다현)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장난으로 감정을 숨기고, 말해야 할 순간에 괜히 튕깁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건 "저때는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였는데, 동시에 "나도 똑같이 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따라왔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다루는 중심 감정 구조를 영화 비평 용어로는 내러티브 감정선(Narrative Emotional Arc)이라고 합니다. 내러티브 감정선이란 이야기 전체에 걸쳐 인물의 감정이 어떻게 고조되고 해소되는지를 보여주는 흐름을 말합니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폭발하거나 충돌하기보다는 조용히 축적되고 조용히 흘러갑니다. 그 점이 장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본 후에 한동안 후반부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는데, 이별 감정이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더 오래, 더 불편하게 붙잡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씨네21 리뷰에서도 "부끄러움은 지워진 채 서툰 사랑의 낭만만 담겼다"는 평이 나온 것처럼(출처: 씨네21),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청춘의 혼란보다 낭만 쪽을 선택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진우가 장난을 치다 선아 앞자리로 오게 되는 도입부의 어색한 긴장감
- 서로 좋아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중반부의 미묘한 균형
-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다시 바라볼 때 느껴지는, 이해와 아쉬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이 세 가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축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리메이크 영화로서의 완성도, 어디까지 평가할 수 있을까
리메이크(Remake)란 기존 작품의 이야기 구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 문화, 배우로 재해석한 작품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2011년 대만 원작의 두 번째 리메이크로, 2018년 일본 리메이크에 이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리메이크를 평가할 때 핵심 기준 중 하나가 문화적 번역의 자연스러움인데, 이 점에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은 비교적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에서 선정적이었던 장면들이 많이 순화되었고, 평행세계 설정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일부 관객들이 당혹감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공감했는데, 해당 설정이 빠지면서 진우와 선아의 키스 장면이 맥락 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메이킹북 대본에는 관련 내용이 있다고 하니,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흥행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겼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누적 관객수는 약 164,769명으로, 손익분기점인 70만 명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2월 비수기와 《미키 17》 같은 대작과의 경쟁이 겹쳤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2월은 국내 영화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관객 수가 가장 낮은 달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극장보다 스트리밍으로 봤을 때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넷플릭스를 포함한 여러 플랫폼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5회 황금촬영상 신인 감독상(조영명 감독), 2025 서울국제영화대상 여우 신인상(다현) 등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했습니다. 특히 다현의 경우 이 작품이 데뷔작임에도 상당히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고, OST 작사와 작곡에도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첫사랑이 떠오르는 영화를 찾고 계신 분이라면, 이 작품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입니다. 다만 현실의 복잡한 감정까지 담긴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조금 더 깊이 파고드는 작품을 함께 찾아보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그때는 왜 사랑인 줄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는데, 그 여운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