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운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라라랜드입니다. 저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는데,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오래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단순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나오면서는 "이게 과연 사랑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한참 붙잡고 있었으니까요.

14개 부문 후보작이 탄생한 배경
라라랜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위플래쉬를 만들기 전부터 각본을 써두었던 작품입니다. 투자를 받지 못해 수년을 기다렸고, 위플래쉬의 성공 이후에야 겨우 제작에 들어갔죠. 제작비는 3,000만 달러, 지금 기준으로도 블록버스터와 비교하면 상당히 빠듯한 예산입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 흥행 수익은 약 4억 4,7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제작비 대비 수익률로 따지면 이례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ROI(투자 대비 수익률)란 투입된 자본 대비 얼마나 많은 수익을 거뒀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라라랜드의 경우 단순 계산으로도 14배 이상의 수익을 낸 셈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 중 하나가 '장르적 혼종성' 덕분이라고 봅니다. 뮤지컬 영화이지만, 기존 뮤지컬 영화와는 결이 다릅니다. 여기서 장르적 혼종성이란 하나의 작품 안에 두 가지 이상의 장르 문법이 공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라라랜드는 클래식 할리우드 뮤지컬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현실적인 드라마의 정서를 그 안에 얹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을 잘 모르는 관객도 감정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는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주제가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한 가지 유명한 소동도 있었는데, 시상자가 작품상 수상작을 라라랜드로 잘못 호명하는 방송 사고가 생겼습니다. 실제 수상작은 문라이트였고, 이 장면은 지금도 시상식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음악과 영상이 만드는 미장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라랜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위치, 조명, 색감, 소품, 카메라 앵글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화면 하나하나가 감독의 언어인 셈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색채 설계입니다. 계절에 따라 등장인물의 의상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두 사람의 감정 온도를 색감으로 먼저 전달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전에 눈으로 먼저 느끼게 되는 구조라, 처음 볼 때는 잘 몰랐다가 두 번째 볼 때 "아, 이 장면에서 이미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현실을 초월한 낭만의 절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오히려 그 이후 현실의 벽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장면 자체가 비극의 복선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게 읽혔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기도 하다는 느낌이요.
음악 면에서는 저스틴 허위츠가 작곡한 OST가 핵심입니다. 특히 City of Stars는 다이에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와 논다이에제틱 사운드(non-diegetic sound)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다이에제틱 사운드란 영화 속 인물이 직접 듣고 반응하는 소리이고, 논다이에제틱 사운드는 관객만 듣는 배경음악입니다. 이 두 층위가 뒤섞이면서 현실과 꿈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릿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라라랜드의 음악적 완성도를 살펴볼 때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City of Stars: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곡으로, 두 주인공이 각각 부르며 서로 다른 감정 온도를 보여줌
- Mia & Sebastian's Theme: 피아노 선율 하나로 두 사람의 관계를 요약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기능을 담당
- Another Day of Sun: 오프닝 시퀀스 곡으로, LA 고속도로에서 90명의 댄서와 함께 이틀간 촬영한 결과물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미아의 1인극 오디션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으로, 엠마 스톤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핵심 장면
결말 해석,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라라랜드의 결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합니다. 아름다운 성장 서사로 읽는 쪽과, 쓸쓸한 상실의 이야기로 읽는 쪽입니다.
5년 후 장면에서 미아는 유명 배우가 되어 있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함께는 아닙니다. 미아에게는 새 남편과 아이가 있고, 세바스찬의 재즈바에서 두 사람은 짧은 눈빛을 나눕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이 환상 시퀀스로 펼쳐집니다.
이 환상 시퀀스를 두고, "결국 그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임을 인정하는 장면"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 "꿈을 쫓는 대가로 사랑을 잃었다는 비극의 확인"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직접 두 번 봤는데, 첫 번째는 전자로 읽혔고 두 번째는 후자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보는 시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비평가들도 이 지점에서 의견이 엇갈립니다. 전미 비평가협회(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를 비롯한 다수의 비평 단체가 라라랜드를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로맨스의 결말이 지나치게 관조적이어서 감정적 해소 없이 끝난다는 점을 아쉬운 지점으로 꼽기도 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세바스찬이라는 인물도 단순히 낭만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음악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 현실과의 마찰, 키이스와의 갈등. 이 모든 요소가 그를 매력적이면서도 불편한 인물로 만듭니다. 저는 이 점이 영화를 단순한 판타지로 소비하지 않게 해주는 장치라고 봤습니다.
라라랜드는 결국 두 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영화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가"와 "포기한 것이 정말 포기한 게 맞는가". 이 두 질문 중 어느 쪽이 더 크게 들리는지에 따라 이 영화가 당신에게 어떤 영화로 남을지가 달라집니다. 처음 볼 때와 다른 시기에 한 번 더 볼 것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꿈과 사랑 사이에서 한 번이라도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을 건드릴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9D%BC%EB%9D%BC%EB%9E%9C%EB%93%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