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든 첫 생각이 "나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었지?"였습니다. 셀린 송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머티리얼리스트》는 다코타 존슨, 크리스 에반스, 페드로 파스칼이 출연하는 A24 제작 작품입니다. 보고 나면 한참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입니다.

사람을 조건으로 보는 게 정말 나쁜 걸까요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영화 때문이 아니라 저 자신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영화는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커플매칭매니저 루시(다코타 존슨)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여기서 커플매칭매니저란 의뢰인의 조건을 분석해 최적의 파트너를 연결해주는 전문 직종을 의미합니다. 루시는 하루 종일 사람을 연봉, 키, 직업, 라이프스타일로 분류하고 조합합니다. 보다 보면 이게 차갑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사실 이러고 있지 않았나" 싶어집니다.
영화에서 루시가 결혼의 조건을 논하는 장면이 있는데, 키가 5피트 11인치(약 180cm) 이상이면 가산점이 붙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심지어 다리 뼈를 부러뜨리고 철심을 넣어 최대 15cm를 키울 수 있는 수술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웃으면서도 뭔가 씁쓸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은데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아서요.
실제로 결혼 시장에서 외모와 키 같은 신체적 조건이 배우자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배우자 선택 행동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초혼 남녀 모두 상대방의 경제력과 외모를 주요 기준으로 꼽는 경향이 꾸준히 관찰됩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영화가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루시가 사람을 조건으로 보는 방식이 냉정해 보이면서도 이해가 되는 이유는, 그녀가 사랑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현실 안에서 사랑을 살아남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공감한 부분이었습니다.
머티리얼리스트가 보여주는 조건 중심의 연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봉, 키, 직업, 라이프스타일 등 수치화 가능한 요소가 배우자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된다
- 감정보다 현실적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 사랑과 조건 중 어느 쪽도 완전한 답이 아님을 인물들이 몸으로 보여준다
뉴욕이라는 배경이 만드는 고독감
제 경험상 배경이 영화의 감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머티리얼리스트》에서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정서 자체입니다.
고급 레스토랑, 세련된 아파트,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화면은 내내 아름답고 세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그 세련됨 안에 굉장히 두꺼운 고독감이 깔려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계속 누군가를 만나고 비교하고 더 좋은 선택을 찾지만, 정작 진짜 연결감은 점점 어려워 보입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 등을 통해 감독이 의도한 분위기와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입니다. 셀린 송 감독은 이 미장센을 굉장히 의도적으로 활용합니다. 아름다운 공간과 세련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안의 공허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화려한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꽤 매력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보면 "저 삶이 문제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근데 저 레스토랑 가보고 싶다"는 감정이 동시에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비판인지 동경인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 있고, 저는 이게 의도적인 장치라고 봤습니다.
셀린 송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실제로 뉴욕의 결혼정보회사에서 6개월간 커플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자전적 경험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고, 그래서 뉴욕의 분위기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직접 그 안에서 살아본 사람이 만든 공간이니까요.
결말은 왜 그렇게 안전하게 마무리됐을까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에 걸렸던 건 사실 결말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의 냉소적인 시선이 너무 강렬해서, 후반에 감정이 비교적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영화는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의 흐름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사랑 대 조건'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반복합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를 결정하는 틀로, 관객이 인물과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 구조 안에서 루시는 부유한 해리(페드로 파스칼)와 전 남자친구이자 무명배우 겸 웨이터인 존(크리스 에반스) 사이를 오갑니다. 두 인물은 각각 '조건'과 '감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오히려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인 경험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고 해소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영화가 조금 더 불편하고 모호한 결말로 갔다면 이 감정적 해소가 더 강하게 남았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생각보다 따뜻하게 마무리됐네"라는 인상이 든 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살짝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그래도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 연애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정확하게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경제력, 미래, 생활 수준과 분리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2025년 기준 국내 혼인 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 영화가 지금 시점에 나온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출처: 통계청).
이동진 평론가가 "보여주는 대로 고스란히 따라간 관객들이 영화가 결론지어 하는 말에 과연 수긍할까"라고 평한 건 정확하다고 봅니다. 영화의 질문은 선명한데, 답은 생각보다 무난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감동적인 영화라기보다,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과 누군가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같은 말인지, 《머티리얼리스트》는 그 질문을 꺼내놓고 끝납니다. 답은 각자가 들고 나가야 합니다. 로맨스를 기대하고 들어가도 좋지만, 보고 나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이 생길 준비는 해두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에서도 현재 스트리밍 중이니 아직 못 보셨다면 한번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A8%B8%ED%8B%B0%EB%A6%AC%EC%96%BC%EB%A6%AC%EC%8A%A4%ED%8A%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