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초등학생이던 저는 스크린 속 앤디가 촌스러운 코트를 벗어던지고 런웨이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때만큼 열정적인 사람이 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그 기억 하나가 오래 남아서인지, 속편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속편의 배경과 줄거리
2026년 4월 29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원작 소설 《복수는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의 귀환》을 원작으로 합니다. 전편과 동일한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각본가 엘린 브로쉬 맥켄나, 제작자 웬디 피너먼이 20년 만에 다시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에게는 상당한 신뢰감을 주는 조합이었습니다.
영화의 핵심 설정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위기를 맞은 패션 매거진 런웨이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입니다. 미란다 역의 메릴 스트립, 20년 만에 신임 기획 에디터로 돌아온 앤디 역의 앤 해서웨이, 럭셔리 브랜드 임원이 된 에밀리 역의 에밀리 블런트까지, 세 인물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는 설정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흥행 요소였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전편이 신입 사원의 성장담에 집중했다면 이번 속편은 이미 각자의 자리를 갖춘 인물들이 서로 경쟁하고 연대하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달라졌습니다.
박스오피스 성적과 흥행 요인
흥행 수치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꽤 성공적인 속편입니다. 2026년 5월 17일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수익은 약 5억 4,600만 달러를 기록했고, 북미에서만 1억 7,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누적 관객 수가 147만 명을 넘어서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이 영화가 흥행한 배경에는 IP(지적재산권)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여기서 IP란 특정 작품이나 캐릭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파생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원천 재산권을 뜻하는데,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검증된 IP를 활용한 속편이나 리부트가 신규 오리지널 작품보다 흥행 안정성이 높다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전편의 강력한 팬덤 위에서 출발한 덕분에 개봉 첫 주말에만 7,670만 달러라는 인상적인 북미 오프닝을 기록했습니다.
전편과의 차별화 포인트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디올, 펜디, 불가리, 지방시,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들이 전폭적인 협찬을 제공하며 영화의 비주얼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전편에서는 실제 모델의 모티브가 된 인물 안나 윈투어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업계 협조가 거의 없었다는 후일담과 비교하면, 속편의 제작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에서 의상과 배경의 완성도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끌어당기는 일종의 세계관 설득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논란, 과민반응인가 아니면 정당한 비판인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역시 이 논란입니다. 개봉 전 공개된 클립 영상에 등장한 중국계 미국인 캐릭터 진을 두고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특정 집단에 대한 단순화되고 고정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의상, 커다란 안경, 자기 소개에서 학력을 속사포로 읊는 장면 등이 동아시아인에 대한 전형적인 희화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비판 중에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는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명백한 차별 발언은 아니지만 특정 집단을 향한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비하가 일상적 행동이나 표현 속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를 가리킵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진 캐릭터가 바로 이 마이크로어그레션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양쪽 시각이 모두 이해가 됩니다. 일부에서는 "전편의 앤디도 초반에 촌스럽고 무시받는 역할이었다"며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을 내놓았고, 저도 그 논리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편의 앤디는 패션 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외부인이기에 무지한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진은 이미 인턴 경험까지 있다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자존감이 낮아지며 학벌 자랑을 늘어놓는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논란이 실제 흥행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면, 논란의 진원지인 중화권 반응과 달리 한국과 일본에서는 관객이 비교적 꾸준히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지역에서 모두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니까요.
아래는 이 논란을 바라보는 주요 시각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 비판 측: 동아시아인을 코미디적 소재로 활용하는 할리우드의 오랜 관행이 반복된 사례이며, 성공한 역할이라도 묘사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
- 옹호 측: 전편의 앤디처럼 초반 캐릭터의 불완전함은 서사 구조상 의도된 설정이며, 영상 클립만으로 전체 맥락을 단정하기 이르다는 입장
- 중립 측: 제작자의 의도보다 실제로 관객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더 중요하며, 반복되는 패턴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재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영화 전문 매체들도 이 부분을 꾸준히 지적해 왔는데, 이런 논의가 산업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씨네21).
팬으로서 느낀 아쉬움과 영화의 완성도
제가 이 영화를 팬의 눈으로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아쉬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복잡함이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돈 룩 업 이후 5년 만에 정식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앤 해서웨이와 에밀리 블런트는 각각 아카데미 수상·후보 경력을 가진 명배우로 성장해 돌아왔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세 배우에게도, 저에게도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기분 좋은 속편"이라는 평가에 집중됐습니다.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기준 신선도 78%, 관객 점수 85%를 기록했는데, 로튼 토마토란 영화 리뷰 집계 사이트로 전문 평론가 평가와 일반 관객 평가를 각각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플랫폼입니다. 두 수치의 차이가 7%p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평론가와 관객 사이에 큰 괴리가 없는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앤 해서웨이가 47벌 이상의 의상을 소화했다는 사실이나,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두 배우에게 선물된 한국 전통 자수 하이힐이 해외 SNS에서 화제가 됐다는 이야기는 제가 직접 챙겨봤는데, 그 디테일이 영화를 둘러싼 경험 전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종차별 논란은 팬으로서 정말 슬픈 부분입니다. 2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영화가 속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고 애정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면 그 애정이 조금씩 깎이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든, 저는 20년 전 스크린 앞에 앉았던 초등학생이 다시 열정을 꿈꿨던 그 감각을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판이 과하다고 보시는 분도, 충분히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분도 저는 둘 다 이해가 됩니다. 다만 이런 논의가 쌓이고 쌓여서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세심한 선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