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학교에 갔을 때 아무도 내 쪽을 보지 않으면 더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낯선 자리에 앉아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면서, 동시에 너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던 그 모순된 감정. 영화 원더를 보다가 그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안면기형을 가진 열 살 소년 어기 풀먼이 처음 학교 복도를 걷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환경, 낯선 시선 앞에 서다
원더는 2017년 개봉한 미국 드라마 영화로, R.J. 팔라시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감독은 스티븐 크보스키로, 성장 소설의 영화화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입니다. 주인공 어기는 하악-안면 이골증(mandibulofacial dysostosis)을 포함한 복합적인 선천성 안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하악-안면 이골증이란 안면 골격의 발달 이상으로 인해 눈 주위, 광대뼈, 턱, 귀 등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희귀 질환을 의미합니다. 어기는 출생 후 27번의 성형외과적 재건 수술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 시간 동안 학교 대신 홈스쿨링(home schooling)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홈스쿨링이란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부모나 교사가 직접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중학교 입학 나이가 되어 비처스 예비중등 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 어기의 시선에서 포착되는 풍경은 그냥 스쳐 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흘끔 쳐다보고 고개를 돌리고, 어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첫인상이 주는 낙인(stigma)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처음 느낀 거리감이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굳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어기가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히 외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낯선 구조, 낯선 관계, 낯선 규칙. 새로운 환경 자체가 주는 불안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장애 인식 교육 영상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어기가 새 학교 적응 과정에서 겪는 핵심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학 전 교장 투쉬먼의 안내로 세 명의 학생이 학교를 미리 소개해 주는 장면
- 첫 등교 후 줄리안 앨번스로부터 지속적인 언어적 따돌림을 경험하는 과정
- 유일한 친구라 믿었던 잭 윌이 할로윈 날 무심코 내뱉은 말로 어기에게 상처를 주는 사건
- 서머 도슨이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점심 자리를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장면
공감이라는 기적, 여러 시점으로 읽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장 드라마는 주인공 한 명의 시선에만 집중하는데, 원더는 멀티 퍼스펙티브(multi-perspective) 구조를 취합니다. 멀티 퍼스펙티브란 하나의 사건을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번갈아 보여주는 서사 기법으로, 독자나 관객이 단일한 해석에 갇히지 않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어기의 시점 외에도 누나 비아, 친구 잭, 비아의 친구 미란다의 시점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비아의 파트에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비아처럼 소외된 사람의 감정을 늘 영화가 잘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비아는 어기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4년간 첫아이로 받아온 관심이 동생 쪽으로 옮겨간 후의 복잡한 감정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어느 순간 한 번 동생을 향해 올라온 불편한 시선을 스스로 알아채고 반성하는 장면은, 오히려 그 정직함 때문에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미란다의 파트는 제가 오래 생각한 대목입니다. 그녀는 여름 캠프에서 비아의 가정사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사칭합니다. 정작 자신의 이혼 가정은 드러내기 싫었던 것이죠.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내면적으로 변화해 가는 궤적이라는 측면에서, 미란다는 영화 속에서 가장 섬세하게 설계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결핍을 타인의 이야기로 채우려 했던 사람이 결국 무대 위 주연 자리를 비아에게 양보하는 장면은, 관객이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이타성의 순간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 반응은 정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공감 피로란 타인의 고통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어기 주변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치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어기 곁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착한 영화' 이상의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라고 봅니다.
영화가 남긴 질문, 일상에서 찾은 대답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자꾸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기가 졸업식에서 상을 받으며 "죽음의 별을 폭파시킨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스타워즈에서 죽음의 별을 폭파한 루크 스카이워커가 훈장을 받듯, 어기는 그냥 학교 1년을 버텼을 뿐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영화 113분 동안 우리는 이미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제 경험상, 누군가에게 그냥 말을 걸어주는 것,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 그 작은 행동이 한 사람의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저도 받아본 쪽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기에게 서머가 그랬던 것처럼요.
한편, 영화가 다소 이상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은 제 눈에도 들어왔습니다. 학교 폭력과 편견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 현실보다 빠른 속도로 봉합이 이루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내 장애 아동의 학교 생활 적응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장애 학생의 학교 내 차별 경험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영화가 그 복잡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더가 한국의 일부 학교에서 장애 이해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 있습니다. 영화적 감동이 교육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사례입니다. 미국에서도 장애를 가진 학생의 일반 학교 통합 교육, 즉 인클루시브 에듀케이션(inclusive education)을 장려하는 연방 정책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인클루시브 에듀케이션이란 특수 교육 대상 아동을 분리된 공간이 아닌 일반 학급에서 함께 교육하는 방식을 말합니다(출처: 미국 교육부).
원더는 특별한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낯선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 용기를 찾는 과정.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요즘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있나"였습니다. 그 질문이 불편하다면, 이 영화는 제대로 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