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습니까? 직장에서, 혹은 일상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조용히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의외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을 보고 나서 저는 그 질문을 한참 붙잡고 있었습니다. 70세 시니어 인턴과 30대 여성 CEO가 함께 일하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직장 코미디라고 생각했다가 마음이 꽤 오래 따뜻했습니다.

70세 인턴이 보여주는 것들 — 팩트와 배경
혹시 이런 영화는 결국 "젊은이가 어른에게 배운다"는 익숙한 서사 아닐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방향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전화번호부 출판 회사 덱스 원(Dex One)의 전직 임원 출신으로, 정년퇴직 후 여행과 요가로 노후를 보내다가 온라인 패션 쇼핑몰 "About the Fit"의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합니다. 여기서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이란, 65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하는 고령자 재취업 지원 제도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이 기업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소재 자체의 시의성입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 이후의 삶과 재고용 문제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24년 기준 전체 인구의 약 19%를 넘어섰으며, 고령 취업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그래서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와 닿습니다. 한국에서만 최종 관객 361만 명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벤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성실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워크플로우(업무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조용히 신뢰를 쌓습니다. 워크플로우란 업무가 진행되는 순서와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빠르게 변하는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벤은 SNS 계정 만들기를 어려워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수십 년의 직장 경험에서 나온 판단력으로 줄스를 돕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경험치가 높은 사람이 조직에 주는 안정감"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서구권보다 동아시아에서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연장자에 대한 존중과 세대 간 배움을 중시하는 문화적 맥락이 이 영화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있는데, 제 경험상 그 설명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인턴》에서 주목할 만한 구성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이라는 현실 소재를 영화적으로 풀어낸 방식
- 세대 갈등이 아닌 세대 연결로 이야기를 구성한 시각
- 로버트 드 니로의 젠틀맨 연기가 주는 이색적인 캐릭터 경험
-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따뜻하고 편안한 연출 톤
보고 나서 든 솔직한 생각 — 경험과 의견
이 영화를 보기 전, 저는 "나이 든 인턴이 젊은 직원들에게 핀잔이나 듣다가 결국 인정받는" 전형적인 흐름을 예상했습니다. 그게 보통 이런 설정에서 쓰이는 드라마터지(dramaturgy) 공식이니까요. 드라마터지란 극작술, 즉 이야기를 구성하고 갈등을 설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턴》은 그 공식을 거의 따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게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벤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옳은 선택을 하고, 어떤 갈등도 그의 잘못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비평계에서 "시기적절한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고,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벤이 너무 완성된 캐릭터이다 보니, 영화가 기대하게 만드는 진짜 성장 서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꽤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영화가 주는 감동이 갈등의 해결에서 오는 게 아니라 관계의 온도에서 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줄스와 벤이 가까워지는 과정, 벤이 젊은 동료들에게 손수건 하나를 건네며 건네는 말 한 마디, 이런 장면들이 쌓여서 감동을 만듭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측면에서 보면 줄스의 이야기가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심리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궤적을 의미합니다. 줄스는 외부 CEO를 영입할지 말지를 고민하면서, 성공과 가정 사이에서 타협하려는 자신을 마주합니다. 그 갈등이 현실적이었고, 저는 그 장면에서 실제로 감정이 움직였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관객은 해외 영화 중에서도 가족 관계와 직장 내 인간관계를 다루는 드라마에 높은 공감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인턴》이 한국에서 유독 강한 흥행을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가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벤의 노후가 지나치게 여유롭게 그려지다 보니, "은퇴 후 다시 일하고 싶다"는 그의 동기가 처음부터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고, 세계 여행을 다니고, 요가까지 하는 사람이 왜 인턴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 설명이 조금 더 깊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 점은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갸우뚱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분명 할 말이 있는 영화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왜 진부하게 들리는지, 그리고 정말로 나이를 뛰어넘는 관계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무래도 다른 영화들과는 다릅니다.
결국 《인턴》은 힐링 무비(healing movie)라는 장르적 정체성에 가장 충실한 영화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힐링 무비란 극적 긴장감보다 따뜻한 감정적 위안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가리킵니다. 자극적인 갈등이나 강한 반전을 원하는 분께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지치고 빠른 일상에서, 벤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어떨까 한번쯤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 편한 날 저녁에 틀어놓기 딱 좋은 영화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D%B8%ED%84%B4(%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