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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요리 먹방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틀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가벼운 작품이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두 여성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바꿔가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게 남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줄리&줄리아 포스터

실화가 주는 무게감, 두 여성의 교차 서사

줄리 & 줄리아(2009)는 교차 편집(cross-cutting)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교차 편집이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두 이야기 사이의 연결고리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편집 기법입니다. 1950년대 파리의 줄리아 차일드와 2000년대 뉴욕의 줄리 파월이 스크린 위에서 교차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보다 보면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 이야기의 온도 차이였습니다. 줄리아 쪽은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반면, 줄리 쪽은 현실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줄리아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에서 요리를 배우는 장면부터 화면이 활기차고, 실패해도 다시 웃으며 도전하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르 코르동 블뢰란 1895년 파리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요리 교육 기관으로, 전문 셰프 양성과 요리 기술 연구로 명성이 높습니다.

반면 줄리의 이야기는 공감이 먼저 옵니다. 저도 한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던 시기가 있었는데, 줄리가 직장에서 지쳐 가는 모습이 그 시절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래서 줄리가 1년 365일, 524개 레시피라는 목표를 세우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응원하게 됩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미화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실제로 줄리아 차일드는 줄리 파월의 블로그 프로젝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줄리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에 줄리가 섭섭해하는 장면이 짧게 나오는데, 저는 그 장면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동경하는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건 꽤 아픈 일이니까요.

메릴 스트립의 연기와 줄리아 차일드라는 인물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메릴 스트립을 빼놓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6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직접 보면 왜 그 평가가 나왔는지 바로 이해가 됩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키가 188cm에 달했던 실존 인물로, 메릴 스트립은 특유의 걸음걸이와 높고 쾌활한 목소리를 그대로 구현합니다.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그 인물의 에너지 자체를 가져온 느낌입니다. 제 경험상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어려운 건 외형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기운인데, 메릴 스트립은 그걸 해냈습니다.

에이미 애덤스 역시 줄리 역할에서 충분히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다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차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줄리아는 실패에도 웃는 인물이고, 줄리는 불평과 자기 의심을 반복하는 인물입니다. 줄리가 더 현실적이긴 한데,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줄리아 쪽 이야기가 나올 때 더 기다려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블로그를 원작으로 제작한 첫 번째 사례라는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감독인 노라 에프론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알려진 감독으로, 줄리 & 줄리아가 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성 측면에서 서사의 감정 밀도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내러티브 구성이란 이야기를 시간 순서나 인과 관계에 따라 배치하여 관객이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말합니다.

요리라는 소재가 전달하는 삶의 메시지

그렇다면 왜 하필 요리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요리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그려진다고 느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뭔가를 만들고, 그게 완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쌓이는 것이죠.

영화 속 요리 장면들은 실제로 굉장히 정교하게 촬영됩니다.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 측면에서 1950년대 파리의 주방과 2000년대 뉴욕의 좁은 아파트 부엌을 디테일하게 재현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영화의 시각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모든 공간, 소품, 색채 설계를 총괄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두 주방의 대비가 두 인물의 처지와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 요리를 통해 전달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이 쌓여 삶을 바꾼다
  •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것이 도전의 본질이다
  • 좋아하는 일을 기록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영화산업 동향 분석에 따르면, 실화 기반 드라마 장르는 관객의 감정 이입도가 허구 서사 대비 평균 23%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줄리 & 줄리아가 공개된 지 15년이 넘었음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메타크리틱 기준 메타스코어 66점, 로튼 토마토 신선도 77%로 평단과 관객 사이의 온도 차가 있는 편입니다. 국내에서는 네티즌 평점 8.70점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국내 관객의 반응이 더 솔직한 감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완벽하지 않지만, 보고 나서 무언가 하고 싶어지는 느낌을 주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요(출처: 로튼 토마토).

줄리 & 줄리아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거창한 기대보다는 오늘 저녁 맛있는 것 하나 먹으면서 편하게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갑자기 오믈렛을 만들고 싶어지거나, 오래 방치해 뒀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면 그게 이 영화가 의도한 효과일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인생을 바꾸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 이 영화는 그걸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