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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반복 일상, 행복 기준, 현재의 삶)
퍼펙트 데이즈 (반복 일상, 행복 기준, 현재의 삶)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밤, 문득 '오늘도 그냥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날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나서, 그 '그냥 지나간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 하나 없이도 두 시간을 꽉 채웁니다. 행복의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반복 일상이 지루함이 아닌 이유

《퍼펙트 데이즈》를 처음 보면서 솔직히 20분쯤까지는 좀 답답했습니다. 히라야마가 일어나고, 밴을 몰고, 화장실을 닦고, 공원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게 영화 맞나?' 싶을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반복 자체가 메시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이론에서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즉 인물의 동선, 빛, 공간 구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빔 벤더스는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을 미장센으로 표현하며 '이것이 곧 그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반복은 권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히라야마는 같은 루틴을 반복하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햇빛을 받고, 다른 사람과 짧게 눈을 마주칩니다. 똑같은 하루가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것, 그 미세한 차이를 포착하는 능력이 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한동안 매일 똑같은 카페에서 일했는데, 어느 날 창밖 나무 그림자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유독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히라야마가 나무를 사진으로 남기는 장면을 보고 그 날이 생각났습니다.

  • 반복되는 루틴은 히라야마에게 삶의 구조를 제공합니다
  • 같은 공간도 빛과 날씨에 따라 매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 반복 속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감각입니다
요약: 반복은 권태가 아니라 삶의 리듬일 수 있습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늘 비슷하지만, 그 안의 작은 차이를 알아채는 능력이 그를 다르게 만듭니다.

행복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히라야마를 보고 어떤 분들은 "저 정도 삶이면 성공한 거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삶이 행복할 수 있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그건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여기서 주관적 안녕감이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냐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연봉이나 직업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인가'가 핵심입니다. 출처: Positive Psychology

히라야마는 이 기준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는 인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그 태도가 영화 내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히라야마의 조카나 동료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더 원하거나, 더 갖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보다, 영화는 그 두 가지 태도를 나란히 놓고 보여줄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히라야마 쪽이 좀 더 솔직한 삶의 방식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만, 그건 제 기준일 뿐이라는 것도 압니다.

요약: 행복의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본인이 설정하는 것입니다. 히라야마의 삶은 낮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기준 안에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왜 어려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히라야마가 카세트테이프를 바꿔 끼우는 장면이었습니다. 루 리드의 Perfect Day가 흘러나오는 그 순간,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낡은 기기와 늘어진 테이프에서 오히려 뭔가 집중된 감각이 느껴졌거든요.

히라야마의 카세트테이프는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실천입니다. 마음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판단 없이 현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히라야마는 다음 곡으로 건너뛰지 않습니다. 셔플도 없습니다. 한 곡이 끝날 때까지 그 음악과 함께 있습니다. 출처: Mindful.org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 영화가 무조건 단순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히라야마의 삶에도 해결 안 된 가족 관계가 있고, 과거에 대한 무언가 말 못한 감정이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그의 눈물은 그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이 하루를 삽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면서도 지금을 놓치지 않는 균형, 히라야마는 그것을 완벽하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을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요약: 현재에 집중하는 삶은 선택입니다. 히라야마의 카세트테이프는 그 선택을 매일 반복하는 작은 의식입니다. 과거도 있고 외로움도 있지만, 그는 오늘을 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퍼펙트 데이즈, 지루하다는 평이 많던데 볼 만한 영화인가요?

A.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확실히 지루할 수 있습니다. 저도 초반 20분은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남는 종류의 작품입니다. 자극적인 서사보다 조용히 스며드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Q. 히라야마는 왜 화장실 청소부로 설정된 건가요?

A. ~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그래야 직업이 아닌 삶의 태도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 쓰고 지나간 공간을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일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점이 히라야마라는 인물의 조용한 존재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Q. 영화 제목 '퍼펙트 데이즈'가 반어적인 표현인가요?

A. 반어라기보다는 질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하루'의 기준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히라야마에게 완벽한 하루는 아무 사고 없이 일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다 잠드는 날입니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완벽한 하루인지는 각자 판단할 몫입니다.

 

Q. 영화에서 나무 사진을 계속 찍는 이유가 뭔가요?

A. 같은 나무지만 매일 다르게 보인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반복과 변화의 공존입니다. 히라야마에게 나무 사진은 일기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는 설명하지 않지만, 오늘의 빛을 기억하고 싶다는 감각이 그 작은 행동 안에 담겨 있습니다.

결론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제가 바뀐 건 거창한 삶의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퇴근길에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됐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전부가 의외로 작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단순하게 살라는 것도, 성공을 포기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하루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라는 질문 하나를 조용히 건넵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권태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안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바쁘지 않은 날 저녁에 천천히 보시길 권합니다. 다 보고 나서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였을지도 모릅니다.

참고: 출처: IMDb — Perfect Day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