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8년 개봉 당시 총 관객 151만 명을 동원한 《리틀 포레스트》는 제작비 15억 원짜리 소규모 영화였습니다. 그 규모를 생각하면 꽤 놀라운 숫자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감성 영화 아닌가" 하고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못 뗐습니다. 힐링 영화라고 하면 흔히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보는 영화라고 여기기 쉽지만, 이 작품은 그 기대를 꽤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 놓습니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 포스터

힐링 영화라는 말, 생각보다 허술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힐링 영화(healing film)라고 하면 갈등이 적고, 풍경이 예쁘고,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를 뭉뚱그려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힐링 영화란 관객이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정서적 회복을 경험하도록 설계된 장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말이 가장 남용되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임순례 감독이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보통의 힐링물과 다른 길을 걷습니다. "배고파서 내려왔다"는 혜원의 대사가 처음엔 가볍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편의점 폐기 도시락으로 때우던 고시 준비 생활에서 채워지지 않던 내면의 허기를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꽤 정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 사계절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포에틱 리얼리즘(poetic realism)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의 세부 묘사를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시적 정서와 상징을 녹여 내는 연출 기법입니다. 촬영지인 대구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의 풍경이 그 도구가 됩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단순히 "예쁜 화면"과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혜원의 내면도 조금씩 달라지고, 그 변화가 음식을 통해 드러납니다.

  • 손익분기점 80만 명 → 개봉 7일 만에 돌파, 역주행으로 150만 명 달성
  • IMDb 7.1, 왓챠피디아 4.0, 네이버 9.01 — 국내외 모두 고른 호평
  • 한국영상자료원 설문 2018년 한국영화 1위 선정(출처: 한국영상자료원)
  • 제5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감독상(임순례), 제18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여자배우상(김태리) 수상
요약: 《리틀 포레스트》는 흔히 쓰이는 '힐링 영화' 라벨보다 훨씬 정교한 구조를 가진 작품으로, 포에틱 리얼리즘 기법과 음식 서사가 결합된 드라마입니다.

음식과 자연이 단순한 소품이 아닌 이유

이 영화를 두고 "우아한 먹방"이라는 표현이 자주 따라붙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저도 그렇게만 봤습니다. 배춧국, 아카시아꽃 튀김, 오이콩국수, 크렘 브륄레, 감자빵까지 — 화면 안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먹음직스럽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면서 느낀 건, 음식 하나하나가 혜원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감자빵이 그렇습니다. 혜원의 어머니(문소리)는 수능이 끝난 직후 편지 한 통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그 편지에는 혜원이 성인이 되면 알려주겠다던 감자빵 레시피가 담겨 있습니다. 요리를 통해 어머니의 부재를 되짚는 이 구조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 효과처럼 작동합니다. 마들렌 효과란 특정 맛이나 냄새가 과거의 기억을 강렬하게 불러오는 심리 현상을 가리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혜원이 부엌에 설 때마다 그 장면이 단순한 요리 시퀀스가 아니라 기억을 발굴하는 과정처럼 읽혔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음식은 모두 김태리가 직접 조리했고, 원작자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리메이크 조건으로 내건 '일식 포함' 요구에 따라 오코노미야키와 밤조림이 메뉴에 포함되었습니다. 오코노미야키에 들어가는 가다랑어포를 나무토막 형태 그대로 강판에 갈아 쓰는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 저는 촬영 현장에서 꽤 공을 들였겠다 싶어서 촬영 과정이 더 궁금해졌을 정도입니다.

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속 음식이 거의 채식에 가까운 것도 그 성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입니다. 정확히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에 가까운 구성인데,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이란 육류와 어류는 먹지 않지만 달걀과 유제품은 허용하는 채식 유형을 말합니다. 계란 샌드위치, 파마산 치즈, 가다랑어포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요약: 영화 속 음식은 먹방의 소재가 아니라 혜원의 기억과 어머니의 부재를 연결하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청춘 공감이라는 말, 이 영화 앞에서는 좀 다르게 작동합니다

청춘 영화(youth film)라는 장르는 진로 불안, 취업 실패, 관계의 어긋남을 다루는 작품들을 통칭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는 주인공이 좌절 끝에 다시 일어서는 서사적 귀환(narrative return)을 보여 주는 것이 공식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리틀 포레스트》는 그 공식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놓습니다. 혜원은 1년을 시골에서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만, 영화는 그 이후를 거의 보여 주지 않습니다.

재하(류준열)는 지방대 졸업 후 서울 직장을 박차고 나와 고향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은숙(진기주)은 고향 농협에서 일하면서 도시로 나가는 꿈을 키웁니다. 세 사람의 선택은 방향이 다 다르고, 영화는 어떤 선택이 옳다는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의 영화가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일방적인 메시지보다 여지를 남기는 편이 보는 사람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비판적으로 볼 지점도 있습니다. 일부 평론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영화는 귀향 이후의 농촌 생활을 다소 낭만적으로 그립니다. 실제 귀농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공동체 내 갈등 같은 요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표백된 농촌"이라는 평론가 한동원의 표현과 맞닿아 있고, 저도 그 지적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게 이 영화의 목적 자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결함보다는 선택에 가깝다고 보는 편입니다.

  • 혜원 — 임용고시 실패 후 귀향, 사계절을 보내며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감
  • 재하 — 서울 직장 생활의 회의감을 떨치고 귀농 선택, 과수원 운영
  • 은숙 — 고향을 떠난 적 없지만 도시를 꿈꾸는 인물, 세 선택지의 균형추 역할
요약: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선택을 가치 판단 없이 병렬로 놓는 구조가 이 영화의 청춘 공감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건 계절이 바뀔 때입니다. 저도 한동안 바쁜 일상에 치여 지내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시 틀었더니 처음과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힐링 영화라는 말이 가장 저평가되는 방식이 "그냥 편하게 보는 영화"로 소비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그보다 한 층 더 천천히 침투하는 영화입니다.

지금 무언가에 지쳐 있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넷플릭스나 왓챠에서 찾아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다 보고 나서 뭔가를 직접 요리해 먹고 싶어진다면, 그 영화가 제대로 작동한 겁니다.

참고: 나무위키 — 리틀 포레스트(한국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