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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고 나서도 허무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오랫동안 바라던 일을 마침내 해냈을 때, 막상 아무 감흥이 없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픽사의 2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소울(Soul)》은 바로 그 순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 영화가 왜 성인 관객에게 유독 깊이 남는지,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꿈만 바라보던 남자가 맨홀에 빠졌다 — 영화의 배경과 세계관
혹시 지금 이 순간도 "이것만 이루면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살고 계신 건 아닌가요? 뉴욕의 중학교 음악 교사 조 가드너가 딱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드디어 유명 밴드의 공연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맨홀에 빠지는 사고로 영혼이 육체를 떠나버립니다.
조가 떨어진 곳은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입니다. 여기서 태어나기 전 세상이란, 아직 지구에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자신만의 성격과 관심사를 발견하고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는 일종의 영혼 세미나 공간을 의미합니다. 픽사가 이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방식은 꽤 독창적이었는데, 저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기존 픽사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질감에 순간 멈칫했습니다.
조는 이곳에서 22번이라는 영혼을 만납니다. 22번은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를 포기했을 만큼 삶 자체에 무관심한 영혼입니다. 영화는 이 두 캐릭터의 조합을 통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 철학을 끌어냅니다. 카르페 디엠이란 "현재를 즐겨라"는 라틴어 표현으로, 먼 미래의 목표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영화 전체가 이 개념을 중심으로 조용히 흘러갑니다.
- 조 가드너: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품은 중학교 음악 교사, 제이미 폭스가 목소리를 맡음
- 22번: 지구에 태어나길 거부하는 시니컬한 영혼, 티나 페이가 목소리를 맡음
- 태어나기 전 세상: 영혼들이 '스파크(Spark)', 즉 삶의 불꽃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설정됨
감독은 피트 닥터입니다.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그가 이번엔 탄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피트 닥터는 일관되게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그려왔는데, 《소울》은 그 집대성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세 작품을 비교해봤을 때, 《소울》의 세계관이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어른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작품이었습니다.
꿈을 이뤘는데 왜 허무한가 —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을 건드린 장면이 어디였는지 아시나요? 저는 조가 평생 꿈에 그리던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와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기대했던 황홀함 대신 조의 표정에는 "그래서, 이게 다야?"라는 공허함이 번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픽사가 꿈을 이루는 순간을 이렇게 낯설게 그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영화는 여기서 '스파크(Spark)'와 '삶의 목적'을 구분합니다. 스파크란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관심사나 감각을 의미하며, 특정 직업이나 성취 목표와는 다릅니다. 22번이 처음으로 피자 한 조각을 먹고, 바람에 날리는 씨앗을 손바닥으로 받는 장면에서 이 개념이 선명해집니다. 저도 이 장면을 보면서 목표를 향해 달리느라 놓쳤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좋아하는 음악이 우연히 흘러나오는 순간 같은 것들이요.
《소울》이 기존 픽사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여기입니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꿈을 향해 달려가 결국 이루는 서사를 그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꿈을 이루든 말든 삶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서 신선도 95%를 기록한 것도, 이 낯선 메시지가 평론가들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음악도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떠받칩니다. 재즈(Jazz)는 악보를 벗어나 즉흥 연주(Improvisation)를 핵심으로 하는 음악 장르입니다. 즉흥 연주란 미리 정해진 틀 없이 현재의 감각과 감정으로 소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는 영화의 주제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존 바티스트가 재즈 파트를 작곡하고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나머지를 맡은 구성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초반 설정 설명 구간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규칙들을 쌓아가는 속도가 조금 더뎌서, 처음 보는 분들은 15분쯤에 집중이 흩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 구간만 버티면 이후는 훨씬 빠르게 빨려 들어갑니다.
이 영화를 어떤 순간에 봐야 할까 — 실제로 위로가 됐던 이유
혹시 요즘 "이게 맞는 방향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를 보내고 계신 건 아닌가요? 저는 그런 시기에 이 영화를 봤습니다. 당시에는 해야 할 일들에 치여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쉬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잔잔하게 따귀를 때린 느낌이랄까요.
국내에서 이 영화는 코로나19 시국인 2021년 1월 극장 개봉으로 최종 20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당시 외국 영화 중 200만 명을 넘긴 건 《겨울왕국 2》 이후 1년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악조건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저는 그 관객들이 단순히 픽사 브랜드를 믿고 들어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지쳐있던 사람들이 위로를 찾아 들어간 것에 가깝습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 보기엔 다소 어렵다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존(Existence)의 의미, 즉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실존이란 단순히 살아있는 상태를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 주제는 초등학생보다는 일상에 지쳐있는 성인에게 훨씬 묵직하게 닿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봤을 때, 평론가 이동진이 토이 스토리 3 이후 처음으로 별 4.5개를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 목표 달성 후 허무감을 느껴본 적 있다면: 조 가드너의 공연 이후 장면이 직접적으로 와 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 지쳐있다면: 22번이 피자를 처음 먹는 장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주제보다 시각적 완성도와 음악을 즐기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습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음악상, 골든 글로브 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 BAFTA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음악상까지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수상 결과가 작품의 가치를 다 설명하진 않지만, 이 경우엔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오히려 당연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소울》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내가 지금 뭘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나"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영화가 "그래도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낙관을 건네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삶이 언제나 불안하고 환희의 순간은 짧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하게 전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 특별히 힘든 시기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꺼내볼 만한 영화입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고, 국내에서는 극장 상영 이력도 있으니 큰 화면으로 볼 기회가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테리가 "영화는 끝났어! 이제 집에 가!"라고 외치는 장면까지 꼭 보세요. 그 뻘쭘한 웃음도 이 영화의 일부입니다.
참고: 출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 출처: Rotten Tomatoes — Sou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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