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가 오히려 삶을 더 살고 싶게 만든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픽사의 《코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해골 캐릭터에 화려한 색깔, 멕시코 배경이라니 — 아이들용 판타지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엔딩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래 연락 못 한 할머니한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코코》가 말하는 죽음과 기억, 그리고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가 직접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문화 — 《코코》의 세계관 팩트《코코》의 배경이 되는 '디아 데 무에르토스(Día de Muertos)', 즉 죽은 자의 날은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Día de Muertos란 ..
《트루먼 쇼》(1998)는 개봉 당시 리얼리티 TV 포맷을 SF적 극단으로 밀어붙인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된 삶을 살아왔고, 주변 인물 전원이 계약 배우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설정 자체가 너무 황당해서 웃으면서 봤는데, 두 번째 관람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트루먼의 평범한 아침 출근 장면을 다시 보니, 그 '평범함'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것인지 새삼 섬뜩했습니다.영화 속 복선과 상징이 말하는 것들《트루먼 쇼》를 분석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개념이 '디에제시스(diegesis)'입니다. 여기서 디에제시스란 영화 속 세계, 즉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허구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트루먼에게는 씨헤이븐이 완전한 디에..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처음 봤을 때 "예쁘게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 하나만 갖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 화려한 색채 연출과 대칭 구도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분홍색 건물이 왜 그렇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지, 화면비가 왜 갑자기 달라지는지 — 그 이유를 하나씩 따져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색채 연출 — "예쁜 화면"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실수일반적으로 색채 연출(Color Grading)은 영화의 무드를 조정하는 후반 작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색채 연출이란 촬영된 영상의 색조와 명도, 채도를 조절해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
밀러 행성에서 1시간은 지구 시간으로 7년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영화적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일반 상대성이론(General Relativity)의 중력 시간 팽창 개념을 찾아보고 나서야 납득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과학적 설정이 가장 정직하게 감정을 건드린 작품입니다. 블랙홀도, 웜홀도 아닌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전제 하나가 이 영화를 단순한 우주 모험과 완전히 다른 층위에 올려놓습니다.시간 팽창이 영화의 공포가 되는 방식일반적으로 SF 영화의 위기는 물리적 위험에서 옵니다. 폭발, 추락, 산소 부족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제가 《인터스텔라》를 처음 보면서 가장 압박감을 느낀 장면은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쿠퍼 일행..
솔직히 저는 《라라랜드》를 처음 봤을 때 엔딩에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왜 울었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슬프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색감, 음악, 편집이라는 세 가지 도구로 관객의 감정을 얼마나 정밀하게 설계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설계를 하나씩 뜯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색감과 음악 — 말 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일반적으로 영화의 결말은 대사로 감정을 정리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라라랜드》 엔딩을 다시 들여다봤을 때 놀란 건 마지막 몇 분 동안 의미 있는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신 색과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이 영화의 색채 설계는 촬영감독 리누스 산드그렌(Linus Sandgren)이 맡았는데, 시즌별로 미아의 의상과..
《기생충》을 두 번째로 봤을 때 처음과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첫 관람에서는 반전과 사건 전개에 정신이 팔렸는데, 다시 보니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대사가 아니라 인물들이 서 있는 위치였습니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그리고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사람. 이 영화의 공간 설계가 단순한 미술 선택이 아니라는 걸, 두 번째 관람에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반지하와 대저택, 같은 창문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다《기생충》의 공간 연출에서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창문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 창문과 박 사장 가족의 거실 창문, 둘 다 바깥을 향해 열려 있지만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다릅니다.기택 가족의 창문 밖에는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이 보입니다. 시야가 지면 아래에 고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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